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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24기 정리

기창 본문해석

기창(증)

(증)

금제병장십오척보장창동 

오늘날의 창제에서 기창의 길이는 15척이며 보장창과 같다.

오례의왈창삭금제병목장십척칠용흑혹주봉장일척오촌말예인하유모철원예

국조오례의에는 창은 삭이다. 지금 사용하는 창은나무자루는 길이가 10척이며, 검은색이나 붉은 색 옻칠을 한다. 창끝이 길이는 1척 5촌인데, 끝이 날카로우며 양날이 있다. 아래에는 모철이 있는데, 둥글고 날카롭다.

문헌비고왈 숙종삼십이년 명파삼갑사대이기창교전지법((안)관무재급중순시기창이인교전삼합)

동국문헌비고에서는 숙종32년(1706)에 삼갑사를 혁파하고 기창교전법으로 대체하도록 명하였다.

안]관무재와 중순시에서 기창은2인이 삼합을 교전하도록 하였다.

경국대전왈 출마후 이양수 집창고거 협어좌액 즉 회협어우액 제일추자 지중정면자용협어좌액도

경국대선에서는 기창을 말을 타고 출발한 후 양손으로 창을 잡고 높이 들었다가 왼편 겨드랑이에 끼고, 즉시 다시 되돌려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첫 번째 허수아비의 정면을 바로 찌른 자는 창을 왼편겨드랑이에 끼고 오른편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그리고 창을 끌면서 말을 달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온다

제이추자지 우협어우액도 제삼추자지자글번신좌고이창지후우역여지예창치환출마처삼추인상거각이십오보창

두 번째 허수아비에 이르러 또 찌른다. 찌르기를 마치면 몸을 돌이켜 왼편을 돌아보며 창으로 뒤를 가르키고, 오른편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장십오척오촌((안)경국대전소재즉무과시취지제여금예보소재기창유이역구격자지세고금병록지연기중삼십근무사사용자심한운) 

(안)

무비지창우지모야석명왈모장자팔척왈삭(삭음)마상소지무편왈울지경덕(울지공자야당선양인악국공)선피삭우능투적삭환이자지제왕원길(당고조자야)역선마삭문이경지욕친자시명거삭인이간상자경덕청물제지경덕삭근당각인원길불능중태종문왈투삭피삭하자난역대왈투삭난내령경덕두원길삭경덕아경삼투기삭설문왈삭모야역작삭마삭보왈마삭위용수비원법근대상전삭기성예료이여가부찬사법력고제설즉모삭삭개창지류야 


 <경국대전>에서는 기창의 요령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말을 타고 출발한 다음 두 손으로 창을 잡고 높이 쳐들었다(이것이 태산압란세임)가 왼편 겨드랑이에 끼고, 즉시 다시 돌려 오른쪽 겨드랑이에 끼고 첫 번째(제1) 허수아비의 정면을 바로 찌른 자는 창을 왼편 겨드랑이에 기고 두 번째(제2) 허수아비에 이르러 또 찌른다. 또 오른편 겨드랑이에 기고 세 번째(제3) 허수아비에 이르러 찌른다. 찌르기를 마치면 몸을 돌이켜 왼편을 돌아보며 창으로 뒤를 가리키고, 오른편도 또한 이와 같이 한다. 그리고 창을 끌면서 말을 달려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온다. 세 허수아비의 거리는 각각 25보이다. 창의 길이는 15척 5촌이다.” ([안(案)] <경국대전>의 무과 시취(무과시험제도)에서 규정한 기창제도와 <무예도보통지>에 수록돼 있는 기창제도에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역시 치고 찌르는 자세(격자지세)를 갖추고 있으므로 여기에 함께 수록했다. 하지만 무게가 30근이나 되기 때문에 사용하는 무사들이 아주 드물다고 한다.)


[안案]

  <무비지>에서 말하기를 “창을 옛날에는 모라고 했다.”라고 했고, 유희(후한)의 <석명>에는 “모의 길이가 8척인 것을 삭이라고 하는데, 마상에서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명나라 때에 당순지가 편찬한 <무편>에는 삭에 관한 다음과 같은 고사가 하나 수록돼 있다.

  “울지경덕 (이름은 공이고 경덕은 자이다. 그러나 경덕으로 더 많이 알려졌다. 당나라 선양 사라이며 당태종 때의 명장으로 악국공에 봉해졌다.) 이 긴 창을 잘 피했을 뿐만 아니라 적의 긴 창을 빼앗아 도리어 찌르기도 했다. 제왕 원길(당고조 이연의 셋째아들, 당태종 이세민의 아우. 맏형 건성과 짜고 세민을 제거하려다 도리어 울지경덕에게 피살되었다.)도 역시 마상에서 긴 창을 잘 썼다.

  경덕이 긴 창을 잘 쓴다는 소문을 들은 원길이 그를 가볍게 여기고 어느 날 시합을 청하면서 창날을 떼어 내고 창 자루로만 찌르자고 했으나 경덕은 창날을 붙인 채 시합하자고 했다. 울지경덕의 삭(장창. 삼지창 삭)은 조심스럽게 원길의 삭을 막기만 했다. 그러나 원길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진왕(아직 임금이 되기 전이었음) 세민이 경덕에게 ‘삭을 피하는 것과 삭을 빼앗는 것 중에 무엇이 어려고 무엇이 쉬운가?’라고 묻자

  울지경덕이 ‘삭을 빼앗는 게 어렵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세민이 경덕에게 원길의 창을 빼앗아보라는 명령을 내렸다. 경덕이 조금 후에 원길을 창을 세 번이나 빼앗았다.“ ([보補] 그러나 원길과 울지경덕의 싸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당나라 판 왕자의 난이었던 ‘현무문의 변’으로 이어졌는데, 원길은 이 싸움에서 울지경덕에게 결국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허신(후한)의 <설문해자>에는 “삭은 모(창)이다. 또한 삭(장모. 긴창)이라고도 쓴다.”고 했다.

  남북조시대 남조 양나라의 간문제는 <마삭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삭(마상에서 사용하는 긴 창)은 비록 사용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근대에야 전해진 것이긴 하지만 점점 기예가 많이 향상되고 있다. 무료한 여가에 다시 이 법에 관해 찬술하며 여러 가지 설의 역사를 고찰하고 연구해 보니 모, 삭, 삭은 모두 창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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