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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 이야기

조선의 마상무에 격구


비이부터 수양수까지 총8세이다. 고려의 남녀 귀족들이 즐겼던 놀이로 서양의 폴로(polo)와 비슷하다. 조선 초기부터 무과의 한 과목으로 채택하였으나 1725년 이후에는 제외되어 이후 기법이 점점 사라졌다. 조선 초기에 격구(擊球)라는 이름의 격방 놀이가 모든 계층에서 이루어졌는데, 위로는 임금부터 아래로는 평민들까지 즐겼다. 여기서 격구는 말을 타지 않고 평지에서 걸으며 하는 일종의 골프형태의 놀이였다.

격구는 무과의 한 과목으로 조선 초기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도 격구에 관한 규정이 실려 있다. “장시(격구채)는 휘어진 부분의 길이가 9촌이고, 폭은 3촌이며, 자루길이는 3척 5촌이고, 공(모구毛毬)의 둘레는 1척 3촌이다. 말을 타고 출발하는 지점인 출마표와 구표, 곧 경기를 시작할 때에 공을 놓는 지점의 거리는 50보이고, 구표와 구문의 거리는 200보이며, 구문의 폭은 5보이다. 공을 쳐서 구문을 통과한 사람에게는 15점을 주고, 옆으로 통과시킨 사람에게는 10점을 준다.”

태조 이성계도 격구를 잘 했는데, 선수로 뽑혀 경기하던 모습이 [용비어천가]에 기록되어 있다. 고려 때 해마다 단오절에 큰 시합을 열었다. 도시의 큰길에 격구장을 마련하였다. 격구를 즐겼던 고려 귀족들은 매우 사치스러워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구시합을 할 때에는 구경꾼들이 산처럼 모여들었다고 한다.

이덕무가 격구를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대신 오랫동안 격구 공을 만들어온 늙은 금군에게 격구용 말을 훈련시키는 방법을 전해 들었다. “나무공을 항상 말구유에 넣어 두고, 공이 있는 곳에 콩을 뿌려주어 말이 먹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공에 익숙하도록 해줍니다. 오랫동안 공과 친해진 말은 구장에서 공을 집어던져도 (전혀 놀라지 않고) 곧 그 공을 보고 빨리 달려 나가며 공을 칠 때에 내리거나 올리거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무예24기홈페이지 퍼옴>

             2007년 아산이순신 장군 축제에서의 무예24기 선기대 단원들입니다.

마상무예를 할때 가장중요한 2가지가 있습니다. 첫뻔째는 담력이요 두번째는 말과 얼마나 친한가 혼마일체가 되느냐 말을 얼마나 능숙하게 다룰수 있나 입니다.

격구는 마을 능수하게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면서 말과말이 근접걸이에서도 놀라지 않는 훈련을 하기때문에 전투마로써 훈련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송승민 부교련과

그냥차는 축고도 하기 힘든데..... 말위에서 공을 던지고 공을 처내는 것을 한다고생각해 보싶시요 찐짜 어렵습니다. 마상제보다 어려운 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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